[‘행살편세’를 위한 스마트시티] ‘스마트 라이프’로 관점의 전환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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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발전은 적자생존의 역사이다. 환경에 잘 적응했기 때문에 살아남았고, 그 어떤 생명체들보다 번성하여 소위 ‘만물의 영장’이라는 반열에 올라섰다. 물론 미약하지만 연민과 사랑의 힘으로 놀라운 문명을 이룩해왔다. 돌로 만든 도구를 시작으로 인간의 상상을 뛰어넘는 능력을 갖춘 인공지능과 양자 컴퓨터까지 만들어냈다. 인간의 창조한 ‘기술’은 이제 그야말로 인간을 ‘행살편세’를 꿈이 아닌 현실로 만들고 있다. ‘스마트시티’가 바로 그 대명사이다. ‘스마트시티’라는 개념은 굳이 자세한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전국화’됐다. 전세계 주요 도시들은 물론 우리나라 수도 서울뿐만 아니라 이름만 들어서는 어느 위치에 있는지 금방 떠오르지 않는 지역의 소도시까지 ‘스마트 기술’을 바탕으로 한 ‘파라다이스’를 만들기 위한 사업이 이루어지고 있을 정도이다.

물론 기술적 측면에서 보면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이미 스마트 기술은 인간의 삶의 양태를 천지개벽 시켜 놓았으며 우리 인간은 스마트 기술이 구현해 놓은 환경에도 역시 잘 적응하고 있다. 그러나 완벽한 것 같았던 기술에도 여전히 한계가 있다는 것을 2020년 전세계 인류는 목격하고 있다. 물론 과학자들이 흔히 말하듯이 시간이 그 한계를 극복하게 해줄 것이다. 암과 같이 불치 병으로 여겨졌던 질병들이 각종 기술을 바탕으로 하나하나 정복되어 가고 있는 모습에서 보듯이 말이다. 전세계적인 팬데믹이 되어버린 코로나 바이러스 역시 비록 빠른 시간 내에는 어려울지라도 그렇게 될 것이다.

그러나 문제의 핵심은 ‘사람’이다. 그 바이러스가 사람들을 통해 엄청난 속도로 퍼져간다는데 있다. ‘도시는 곧 사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굳이 ‘30년 후면 전세계 인구 10명 중 7명은 도시 지역에서 살게 될 것’이라는 UN의 ‘세계 도시화 전망’을 다시 들먹일 필요가 없을 정도이다. ‘스마트시티’는 이런 전망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살고 있는 ‘도시’에 스마트 테크놀로지를 활용하여 ‘행복한 삶’을 살게 하자는 것이 ‘스마트시티’의 이상이다. 따라서 ‘스마트시티’의 전제는 ‘도시’와 ‘스마트 기술’이다. 도시에 스마트 기술을 적용한다는 것이 스마트시티 구축의 기본 발상이다.

그러나 이 같은 발상에서 사람, 도시에서 생활하고 있는, 그리고 앞으로 생활할 사람들은 그런 기본 발상의 혜택을 받을 대상으로 여겨지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도시 형성 및 유지, 발전의 전제인 사람들에 의해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면 스마트시티의 기본 전제의 하나인 ‘도시’도 문제가 될 수 밖에 없다. 코로나바이러스 팬데믹은 그것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스마트시티를 추진하고 있는 B시의 경우 전염병 확산을 막기 위한 격리 시설부족으로 확진자가 자기 집에서 대기하는 사태까지 벌어지고 있다고 시장이 직접 소셜미디어를 통해 ‘만시지탄’이라고 외치고 있을 정도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그리고 미래가 불투명한 상황 속에서 ‘한국전자기술연구원과 스마트시티 실현을 위해 손을 맞잡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지 의문이 아닐 수 없다.

‘도시’에 ‘스마트 기술’을 적용하여 스마트시티를 실현할 지라도 시민들의 삶이 양태가 달라질 경우 ‘죽은 스마트시티’가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을 것이다. 세계 다른 나라들처럼 우리나라도 법적으로 ‘집콕’이 의무가 될 경우 스마트 가로등, 스마트 모빌리티 등 스마트시티의 기능은 무슨 의미가 있을 것인가? 아무리 스마트 테크놀로지라도 일단 적용되어 현실에 설치된 장치, 장비, 시스템은 그 전제가 달라지면 그야말로 ‘무용지물’이 될 수 밖에 없다. 전국 지자체에서 경쟁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인프라로서의 ‘도시’와 ‘기술’에 초점을 맞춰 추진하고 스마트시티 구축사업은 이러한 상황이 그야말로 ‘뉴노멀’이 될 경우 결과는 불 보듯 뻔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은 필자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지역에서 공적 자금이 투입되어 건설되었지만, 방치되고 있는 시설, 건축물들은 그러한 문제점을 소리없이 외치고 있다.

그렇다면 어찌 하여야 하는가?

가장 중요한 것은 관점의 전환이다. 전세계 전문가들이 꽤 공을 드려 형성해온 스마트시티에 대한 관념을 바꾸는 것이다. 물리적 기반이든, IOT 등 스마트 시스템에 관한 것이든, 규모가 크건 작던 간에, 서울 강남구 혹은 해남 산이면 구성리 스마트시티 사업이건 간에, 그곳에 ‘장착’할 ‘테크놀로지’를 통해 스마트시티를 구축하기 보다는 그 공간의 주역인 시민, 주민들이 ‘스마트 라이프’를 영위할 수 있게 하는데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사람들의 ‘스마트 라이프’로 관점을 전환하는 것이다. 전제, 관점이 달라지면 테크놀로지는 ‘스마트하게’ 따라올 수 있다. 최근 발휘되고 있는 AI의 놀라운 능력은 한 예일 뿐이다.

초등 학교에서 대학까지, 심지어는 사설 학원들까지 모든 교육들이 ‘비대면’ 방식을 채택하고 있는 현실은 달라진 도시 시민, 주민들의 삶의 양태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전세계 각 분야 전문가들은 팬데믹 이후 변화된 사람들의 삶의 양태는 팬데믹이 끝난다고 해도 결코 팬데믹 이전의 삶의 양태로 되돌아 가지 않을 것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신생아로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주거나 활동 등 모든 삶의 양태가 달라질 ‘도시’를 팬데믹 이전에 개발되고 발전시켜왔던 관점을 바탕으로 한 ‘스마트시티’ 구축, 실현은 사람들이 떠나버린 페루 안데스 산맥 고산지대에 있는 잉카 제국의 고대도시, 마추픽추를 ‘스마트시티’로 바꾸겠다는 생각과 비슷할 수 있다.

우리에게 전대미문의 고통을 안겨주고 있는 팬데믹은 어쩌면 스마트시티가 ‘기술’과 시스템 보다는 시민과 주민들을 위한 ‘행살편세’이 되도록 ‘스마트 라이프’에 초점을 맞추라는 준엄한 경고일지도 모른다. 인간을 만물의 영장으로 만든 ‘적자생존’의 능력을 믿고 싶은 것은 필자만의 생각일까?

* 행살편세란? 행복하게 살 수 있는 편한 세상

이연하. CEOCLUB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퍼실리테이터. MS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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